“생명의 벧엘”
창31:32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창31:33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창31:34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창31:35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창31:36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 창31장은 새로운 신앙 즉 “벧엘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신앙으로 전진하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을 모든 것으로 누리는 새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벧엘(Beth+El)은 무엇인가? 문자로는 “하나님의 집”이다. 1)야곱의 집, 2)성막, 3)성전, 4)그리스도, 5)우리, 6)교회, 7)새예루살렘이다. 가장 중요한 중심 기준은 그리스도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 생명으로 통일되고 충만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과 고난을 주시지만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만을 좋아하는 새로운 신앙으로 나아가고 내 삶의 인생의 목표와 비전이 그리스도로 바뀌고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집을 세우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야곱은 이미 하란에서 믿는 아내와 자녀들을 얻어 하나님의 집(“벧엘”)을 시작하였다. ‘벧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물’로서 집의 의미도 포함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가정’으로서 집이기 때문이다. 이는 경륜의 두 면을 나타낸다. 건물로서 서로 생명으로 지어지는 것이고 또한 가정으로서 부모의 생명을 자녀가 받듯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가 받는 것이다. 하나님깨는 그 벧엘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충만인 집이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창31장에는 라반과 야곱의 두 집안이 각각 다 등장한다. 라반과 그 아들들의 탐욕과 시기를 본다. 동시에 야곱과 그 아들들의 여정과 비전을 본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야곱 집안과 라반 집안의 모습을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한다. 물질을 우선시하고 미신을 가진 라반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위한 인생과 가문이 있음을 보여주신다. 우리는 믿음을 부러워해야 하고 세상 요소를 부러워 말아야하고 또 마침내 야곱과 라반이 화해를 이루듯 서로 미워하지 말아야함을 알려주신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야곱의 아들들도 있고 라반의 아들들도 있는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믿음의 아들들이 되겠느냐며 우리에게 첫 장면에서 제시하고 계신다. 두 가문 모두 하나님의 집들이지만 참 벧엘을 위한 야곱의 길이 있다. 우리가 생명이 있기에 라반의 집의 길을 가지 말고 야곱의 집의 길을 가도록 하자. 창31장은 전환점의 장이다. 라반이 라반으로 돌아가는 것이 있고 야곱이 길을 가는 것이 있다. 라반도 하나님을 믿지만 라반의 길로 그치는 신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낳는 언약과 그리스도 인한 약속을 얻는 야곱의 길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인 되길 소망한다. 이후 라반도 잘 살았지만 성경에서 더 이상 그의 행적은 나오지 않는다. 야곱이 주인공이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생명의 신앙을 가졌기에 야곱으로 전환 되었음을 보여준다. 우리 운명은 참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신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낳고 생명을 얻고 생명 안에 충만하고 생명이 지어지게 하는 것이다. 새 목적을 가진 인생의 새로운 출발에 우리 눈물과 회한이 있다. 야곱이 이주하며 새 신앙이 나온다. 이는 하나님께서 많은 환경 변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데 실제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신앙도 새길이길 바라신다. 그 새 길은 그리스도를 우리 안의 생명으로 믿는 생명의 신앙이다.
창31장 전반은 새 출발의 새 비전이고, 31장 후반은 두 항목에 관한 것인데 1)드라빔과 2)돌기둥이다. 우리 신앙의 새로운 길 즉 생명의 과정에서 하나님은 이 두 가지 항목을 주목하여 깨닫게 하신다.
찻째, 드라빔 문제이다. 작은 신상이며 점치는데 쓰고 부적처럼 소유한다. 이는 여전히 우리에게 부정적인 드라빔 미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증거의 돌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또 지체와 이웃들과의 사이에 화목과 화해의 증거의 돌이신 그리스도를 세우는 것이다.
먼저 드라빔을 살펴보자. 라반은 이것을 잃은 것을 두 딸과 사위와 손자 손녀를 잃게 되는 것보다 더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얼마나 정신 팔린 비극인가! 가정의 달에 새겨야할 구절이 바로 위의 창31:33절 “라반이 장막들에 들어가 드라빔을 찾고”이다. 이별하여 앞으로 수십년간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못보게 될 순간에서도 라반은 눈에 불을 켜고 드라빔을 찾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라반의 행동은 행복한 가정에서 어리석은 것에 몰두하고 추구하는 우리 옛 사람의 모습이다. 실은 우리가 이러하다. 참 행복을 모른 채 엉뚱한 것을 찾고 다녔다.
라반은 야곱의 장막에서 드라빔을 찾고 즉 하나님의 교회에서 미신을 찾고 있고, 레아의 장막 즉 하나님의 가정에서도 드라빔을 찾고 있고, 라헬의 장막 즉 아끼는 딸의 집에서 나올 그의 영광에서도 미신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런 미신은 심각한 죄악이다.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죄와 저주를 내보내시고 일생 축복하시기로 언약하셨다. 고로 라반처럼 미신에 기대거나 또는 그리스도를 믿어도 미신처럼 믿는 것은 즉 여호와를 의지하되 드라빔 같은 미신적 요소로 믿는다면 이는 가증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부정하는 불신과 저주 받은 이방인에 속하는 짓이며 만복의 그리스도 피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미신적으로 믿으며 그릇된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다 드라빔이다. 라반이 하나님을 믿지만 미신을 믿는 것도 문제인데 더구나 하나님을 믿어도 미신적으로 믿는 것도 드라빔을 찾는 것이다. 종교가 된 기독교에는 드라빔이 너무 많다. 환상과 예언과 이적을 추구하는 것도 바로 드라빔을 추구하는 것으로 미신적으로 믿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진짜 환상은 그리스도 비전뿐이고, 참 예언은 오직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필요한 이적은 그리스도 생명이다. 누군가 천국을 지금 보여준다고 해도 믿지 말라. 우리가 봐야할 천국은 지금 내 안에 씨뿌려진 그리스도이고 이분이 바로 천국이고 그리스도 생명을 가진 우리 가정과 교회가 진짜 천국이다. 죽어서 가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이고 이 새 예루살렘이 에덴 동산 즉 낙원이며 우리 모두가 새 예루살렘이다. 결국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그리스도로 충만하여 연합된 곳인데 사실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충만이 된 우리들이다. 결국 그리스도 안의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충만한 우리들의 총합으로 간다. 오직 그리스도 외에 우리는 미신이나 형상의 종교를 붙들어서는 아니된다. 또 여호와도 믿고 그 여호와를 드라빔을 통해 믿는 것도 어리석은 것도 없어야 할 것이다.
라반의 드라빔과 야곱의 드라빔은 약간 다르다.
*라반의 드라빔: 불신, 재물, 미신 등을 노골적으로 추구하고 하나님을 미신적으로 믿는 것.
*야곱의 드라빔: 그리스도 아닌 것을 선호하거나 사랑하는 것 속에 은밀히 또는 부지 중에 그리스도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축복하셔서 미신에 미혹되지 않게 된 인생으로 바꾸신 것을 진실로 찬송한다. 그리스도는 우리 예언이고 환상이고 형상이고 생명이시다. 할렐루야!
오 놀라운 주 예수님 영원한 언약과 보혈에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 인생이 반드시 부으실 복으로 가득한 것을 믿나이다. 노골적 미신을 제하시고 숨겨진 미신도 끝내시고 날마다 주 예수님을 찬송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영원히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생명이 넘치게 하셔서 그리스도만 보게 하시고 그리스도 지어지는 벧엘의 비전이 선명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얼마나 무궁한지요 어리석은 추구가 없게 하시고 그리스도만 자랑하게 하소서 거룩한 성령이신 당신께서 더 일하셔서 우리로 새길 가게 하소서 오 주 예수여 주 예수여 주 예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