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과의 '비대면 인연' 한 토막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의 인터뷰에서 '생계형 배우' ''최고 연기는 돈이 필요하면 나온다' 등이 나온다. 나는 이 대목에서 목이 턱 걸리는 기분이 었다. 1960년대 그의 시간을 조금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전 남편 조영남과 몇번 만난 적이 있고, 작당도 한적이 있지만 윤여정은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실물로 만나는 우리들의 역사>는 2005년도에 쓴 책이다. 소강이 평생을 걸쳐 수집한 갖가지 물건에 얽힌 이야기다. 소강이 2006년 초 갑작스레 작고하는 바람에 책이 잘 나가다 매기가 끊겼다.
이어령 선생이 추천사를 써준 이 책은 천재시리즈의 영감을 준 책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아쉬움이 있지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책이다.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소강 민관식은 1957년부터 지금까지 장학회를 운영해오고 있다. 소강 장학회는 서울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주었다. 그 대상이 매년 십수명이었다.
소강 컬렉션은 서울 한남동 지하에 있어 먼지가 많았다. 나는 2005년 1월부터 주말마다 이곳에 가서 이야기가 되는 물건을 뒤졌다. 먼지가 너무 많아 마스크를 쓴채 고고학자처럼 발굴 작업을 해나갔다. 신기한 게 나올 때마다 소강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때 좀이 먹은 장학회 철을 뒤지다 한지에 붓글씨로 쓴 이 편지를 발견했다.
단기 4293년 4월 1일
4회 장학생 대표
윤여정.
1960년이면,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다.
국민학교 졸업을 앞둔 윤여정은 아버지가 돌아가셔 가세가 기울어 중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때 장학회가 가여린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열세살 소녀 윤여정.
두루말이에 써내려간 내리닷이 붓글씨의 필체는 어떤가?
글을 읽다보면 사려깊음에 놀라게 된다.
윤여정의 답사는 내가 컬렉션을 탐험하면서 발굴한 여러 진귀한 물품중의 하나였다.전문을 소개한 답사를 읽다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은 결코 어리지 않다. 고마움을 잊지 않고 훌륭한 사람으로 성공해 보답하겠다고 다짐하는 대목에서는 비장함까지 묻어난다.
사람을 단련시키는 것은 시련이다. 노력을 이기는 것은 없다. 시련을 딛고 일어서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선 그윽한 향기가 난다.
툭툭 던지는 배우의 말에서 유머와 위트가 빛난다. 다른 배우들에게서 결코 느낄 수 없는 통찰이다. 오랜 세월 축적된 내공이 빚어내는 결정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출처: 조성관 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