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코로나북트래블(86)(2021.05.14.금)
<내가 사랑한 화가들>(정우철지음)(나무의 철학)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음악과 미술은 인간을 치료하는 힘이 있다.
프랑스 3대 화가는 피카소,샤갈,마티스이다.
그림(은 화가의 언어이고,그림으로 말을 거는 사람이 화가이다)을 감상하는 데 누군가의 설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 최고의 스타 도슨트(docent,박물관이나 미술관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을 말한다)인 정우철이 샤갈을 비롯한 11명 화가를 소환하여 그들의 작품과 그리고 연관된 일화를 안내해주어
미술 수업을 진행한다. 거장들은 지금은 너무나 멋있고 위대한 예술가라고 존경받는 전설이 되었지만,그들 중 고통과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들의 삶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나아가고 붓을 들었다는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정확하게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를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기'라는 불어)라고 부른다.
1.마르크 샤갈(1887~1985,향년98세,동유럽 유대인 출신으로 유한한 삶에서 변치 않는 사랑을 바랐던 화가)
"나는 나의 세계,나의 삶,내가 사랑했던,꿈꿨던,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그렸다."
2.앙리 마티스(1869~1954,85세,색채의 혁명가,야수파의 창시자)
"내가 꿈꾸는 미술이란 정신노동자들이 아무 걱정,근심없이 편안하게 머리를 누일 수 있는 안락의자 같은 작품이다."
3.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매순간 불타올랐던 보헤미안 예술가)
"행복은 우울한 얼굴의 천사이다."
4.알폰스 무하(1860~1939,민족을 위해 그림을 그렸던 프라하의 영웅)
"거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전시장이 될 것이다."
5.프리다 칼로(1907~1954,멕시코화가,고통으로 그려낸 의지의 얼굴)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살아 있음이 행복하다."
6.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과거와 현대를 동시에 간직한 모순의 화가)
"나라는 예술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나의 그림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내가 누구인지,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7.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물랭루주의 밤을 사랑한 파리의 작은 거인)
"인간은 추악하지만,인생은 아름답다."
8.케테 콜비츠(1867~1945,향년 77세)
"이 시대에 변호 받을 수 없는 사람들,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 가닥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싶다."
9.폴 고갱(1848~1903,원시의 색을 찾기 위해 인생을 걸었던 화가)
출생지는 파리인데 자라기는 페루에서다.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죽다. 고갱의 할머니가 페루의
권력층에서 물러난 4년후 다시 파리로 귀환하다. 17살 끝날 무렵 해군입대후 전세계의 바다를 누비다가 파리로 귀환하다. 어머니사망소식을 인도로 향하는 배에서 들었다.후원자의 도움을 받는다.
평일엔 주식을 팔고,주말엔 그림을 그린 '후기 인상주의' 화가중 한 명이다.(폴 고갱,폴 세잔,반 고흐) 고갱의 돈보고 결혼한 아내 메테(부부사이에 자녀가5명이다)는 '덴마크의 진주'라 불리었다. 고갱은 본격적으로 그림공부를 합니다. 화가중의 화가인 카미유 피사로에게 사사를 받는다. 경기침체로 증권시장이 붕괴되어 고갱은 실직하게 되고 화가에 도전한다. 맏딸외에는 화가로의 전향을 반대한다. 주머니사정은 바닥을 치고 결국 처가살이를 하며 장인장모에게 개무시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파리를 떠난다.혁신을 기획하고 전투를 하듯 찾아 헤맨 원색이다. 고갱에게 더 큰 영감을 준 대상은 폴 세잔이었다. 나중에 자기 그림을 사 준 테오덕분에 반 고흐와 함께 아를에서 그림을 같이 그렸는데 두 사람은 너무 맞지 않고 싸우다가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며 자해하자 헤어진다. 고갱은 파리에 잠시 들렀다가 타히티 섬으로 간다. 여기서 두번째 결혼(안나)을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고갱의 대표작이다.
영국의 소설가 서머셋 모옴은 고갱의 발자취를 밟은 후에 집필한 소설이 <달과 6펜스>이다. 달은 고갱이 다가가고자 했던 이상이고,6펜스는 현실이라는 해석이 있다.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10.베르나르 뷔페(구상화가이다.1928-1999,구상의 왕자,20세기의 증인,죽음으로 물든 파리의 민낯까지 사랑한 작가)
"인생이 만약 멋진 것이라면 예술가로서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무심한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사랑이 넘침)밑에서 자라고 명문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 기적적으로 조기입학한다.정물화를 주로 그렸다.사람들의 건조한 모습을 정물로 그린 것이다. 시대표현인 것이다. (전쟁과 죽음을 목도했고 그것도 인생의 모든 고통을 10대 때 겪은 탓에 그림들이 거칠고 어둡다) 그림을 그릴 재료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때는 바야흐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어머니가 뇌종양진단을 받은 지 3개월만에 세상을 떠났고,아버지는 바람나 집을 나갔고,형은 징집된 상태이다."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오직 살기 위해 그렸다." 고백한다. 그의 그림은 그냥 그림이 아니라 한 인간이 단지 '살기 위해'그렸던,절박한 생존의 흔적이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1) 시대공감 2) 세상을 직선으로 표현하다. 그에게
명성과 부가 오자 파리를 떠나 프로방스로 간다.(5년간 새로운 표현기법 연구) 이 시기에 인물화를 많이 그린다.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과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그리고 뷔페는 절친이었다.(1958년에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이를 뽑는 '패뷸러스 영'에 세 사람이 선정된다)
28살에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아나벨을 만나서 결혼하다.둘의 관계는 40년 지속된다.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는 "위대한 예술은 더 이상 구상적이지 않다" 뷔페를 겨냥한다.
뷔페는 천재성이 있었지만 하루도쉬지 않고 매일 10시간씩 그림을 그렸다.(유작이 8,000여점이다)
작업실에서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생을 마감하다. 그러나 편안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11.에곤 실레(1890~1918,28살에 요절.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본 비운의 천재 나르시시스트)
실레는 공부에 관심이 없고 그림에만 몰두했다.
4살 어린 여동생 게르티를 모델로 누드화를 그렸다.
빈 미술 아카데미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다.
보수적이고 답답한 학교 분위기가 싫어 학교를 그만두고 구스타프 클림트가 초대회장으로 있는 '빈 분리파'에 얼쩡거린다.1907년 두 사람이 조우한다.실레는 17살,클림트는 45살이었다.
실레가 21살 일 때 17살의 발리를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발리는 실레와 4년간 동거하며 누드화의 모델이자 헌신적인 연인이 된다. 둘은 헤어지고 실레는 중산층 여성(에디트 하름스)과 결혼한다. 그의 대작 <죽음과 여인>에서 여성 모델은 발리이다.발리는 헤어진 후 종군 간호병으로 전쟁터로 가서 성홍열에 걸려 곧 세상을 떠난다.
실레는 결혼 후 안정과 행복을 찾는다. 이때 유럽전역에 스페인 독감이 유행한다. 임신6개월의 아내도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고 3일 후에 살레도 같은 병으로 눈을 감는다.그때 나이28살이었다.
"예술가를 억압하는 것은 범죄다.태어나는 생명을 죽이는 것과 같다."
12. 수많은 비난과 좌절에도 뜨겁게 살아 불멸의 작품을 남긴 세기의 거장들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