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활력”
창1:20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1: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1:2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 만물을 보라. 하나님이 얼마나 충만하게 하셨는가! 생명은 우리를 주 예수님 안의 다섯째 날로 이끈다. 이날은 더 놀랍다. 우리 생명은 하늘에든 바다이든 어디서든지 살아 움직인다. 넷째 날 우리 생명은 하늘에 가서 다양한 광명들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다섯째 날은 그 하늘 안의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되게 하신다. 특기할 것은, 창세기의 여섯 날들이 짝을 이룬다는 것이다. 제1(빛)일과 제4(광명)일, 제2일(하늘과 바다)과 제5일(새와 어류), 제3일(땅과 나무)과 제6일(땅의 가축과 사람)이 연관되어 있다. 생명은 이렇게 이전 날들을 채우고 표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다섯째 날 안에서 주님은 사망의 물을 생명의 물로 바꾸시고 거기 물고기 생명을 만드신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물고기가 되어 사망의 바다에서 강력하게 헤엄치는 생명이 된 것을 의미한다. 삶이 고단하고 힘들지만 그리스도를 더 누리자. 우리 안의 생명은 진실로 사망의 바다를 헤엄치게 하고 그 사망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바꾸신다. 살아서 움직이는 물고기 생명을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다. 물고기 생명은 나무 생명보다 더 풍성한 생명이고 공중의 하늘에는 주님이 새들의 생명을 내셨다. 물고기 생명에 이어 활기찬 하늘의 새 생명을 내신다. 우리는 까마귀 같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참새가 되고 독수리가 되고 비둘기가 되었다. 이것이 새의 생명이다. 그리스도의 성령도 비둘기 같이 내리셨다. 독수리가 날개 치듯 우리 생명을 비상하는 그리스도를 만난다. 비둘기로서 우리는 순전한 생명이 된다. 사람들이 이 땅에서 받은 육신 생명 안에서도 그리스도 안의 신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
아4: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말씀은 비둘기 생명을 가리킨다. 성경에 비둘기는 거의 50차례 언급된다. 하나님의 진리를 설명하는데 새들의 생명이 사용되고 이는 우리 안에 오신 그리스도 생명이 하늘을 누리는 조류의 생명으로 살게 하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창15장에 비둘기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그가 순전한 그리스도 생명을 십자가를 통해 비둘기로 누렸다는 것이다. 즉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성령의 비둘기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제사를 드릴 때 제물에 손을 얹는 것은 그 제물과 연합하는 것이다. 즉 비둘기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도 의미한다. 그리스도 제사 즉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비둘기 생명이 온 것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이제 비둘기 생명의 중요성을 보자. 그대가 다툼의 자리나 허영의 자리에 간다면 그곳에서 비둘기처럼 떠 있으라. 이것이 생명의 역사이다. 누군가 그대를 칭찬해도 칭찬에 빠지지 말고 비둘기로서 날아서 있으라. 칭찬에 민감해하고 부끄러워하지도 말라. 이 느낌은 자기 애(self-love)에서 나온 것이다. 반대로 비난한다고 크게 민감해 하지도 말라. 이 감정도 자신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칭찬도 담담히 감사하게 듣고 비난도 묵묵히 성찰하며 듣는다. 그대 옛사람은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칭찬을 듣던 비난을 받던 사람의 판단에 심히 매몰되지 말라. 대신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 안에 산다. 이것이 비둘기의 영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의 평안한 느낌으로 들어갈 것이다. 히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사망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들처럼 우리는 세상의 파도에 영향 받아 침몰하고 망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리스도 생명은 우리를 활력 있게 하고 승리를 누리게 하신다.
하늘과 바다에 새와 물고기로 채우셨다는 말씀은 새 창조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으로 하늘과 바다에서 충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하늘과 바다를 채우신다. 물고기는 생명의 믿음이기에 사망의 바다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되고 새들은 생명의 영이기에 진리의 창공에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나는 자가 된다. 각양 종류대로 그 생물을 낸다는 것은 이제 모두 그리스도의 종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유전적 특성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 안의 생명은 우리가 그리스도 종류가 되었으므로 각기 그 종류를 따라 즉 믿음을 따라 사랑을 따라 자라나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씀이다. 땅에 이어 하늘과 바다가 동시에 나오는 것은 우리가 다양한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 생명을 표현하고 활력 있게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머물면 우리 생명은 다섯째 날로 나아가 강력한 하늘 생명이 된다. 즉 늘 사탄을 이기는 강력한 독수리 생명도 누린다. 절망에 머물지 않고 자아의 바위틈에 머물지 않고 독수리처럼 비상하여 그리스도를 더 추구하는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매의 눈도 갖도록 하자. 날카로운 눈으로 진리를 채도록 하자. 그리스도 목표만 뚜렷이 보고 날도록 한다. 그리스도도 그분 자신을 짐승에 수차 비유하셨다. 눅17:17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도 모이느니라.” 그리스도 주검을 통해 우리는 승리를 거두는 독수리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을 두고 독수리와 같은 놀라운 신자들이 모이게 된다. 계4:7 “여호와 앞에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고”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날아가는 독수리로서 그리스도를 만났다.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를 독수리로 표현한 많은 신앙 고백을 나누었다.
그리스도를 더 누리자. 우리 안에 온 그리스도 생명은 반드시 우리를 다섯 째 날로 이끄시고 그 물을 차게 하시고 우리 안의 물고기 생명이 많아지게 하셔서 많은 이들을 먹일 수 있게 하시고 또 우리 하늘을 넓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다양한 새들로서 체험하게 하신다. 하늘에 새들이 가득하고 바다에 물고기가 충만하듯 우리의 사역이 하늘이면 그곳에 충만하게 하시고 우리의 사역이 바다이면 저 아래도 가득 차게 하시길 소망한다. 주 예수님은 우리 다섯째 날이시고 참 하늘이고 참 바다이시며 생명이시다. 할렐루야!
오 주 예수님 놀라운 창조에 감사와 찬송을 올립니다. 우리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손길을 송축하게 하시고 새 창조 안에서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물고기가 되고 성령의 비둘기가 되게 하소서 인생의 바다에서 절망의 파도에 쓸려가지 않게 하시고 물을 거슬러 강력히 헤엄치는 생명의 물고기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오 주 예수여 나의 하나님이시여 주 예수여 나의 여호와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