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립”
롬11:9 “또 다윗이 이르되(시69:22-23) ‘그들의 밥상이 올무(snare)와 덫(trap)과 거치는 것(stumbling stone)과 보응(recompensate)이 되게 하시옵고’”
: 많은 유대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구약에 그리스도(메시야)가 할 일에 대한 예언이 있는데 예수가 이를 실현하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1)메시야가 육체로 땅의 회복과 자손의 회복을 이루어야 하는데 예수는 이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2)메시야가 육체로 와도 십자가에 죽는 약함을 받아들일 수 없고 다윗이 다윗 자손에게 ‘주’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3)육신 이스라엘은 메시야가 자신들만 위한 자이어야 하나 예수는 이방인 믿음을 칭찬하고 이방인이 구원에 더 가깝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메시야가 보내져 성읍을 짓고 백성을 해방시킨다고 문자로 예언되어 있다. “이사야45:13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그런데 나사렛 예수는 문자 그대로 성읍을 지은 적이 없고 이스라엘 백성을 로마에서 해방시키지 않아 메시야가 아니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이다. 어리석은 백성들의 영은 잠자고 눈은 덮여 있고 귀는 닫혀 있어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지도 깨닫지도 못한다. 물론 이스라엘만이 아니다. 빌라도와 로마 병사들도 이방인을 대표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마찬가지로 온 세상이 눈먼 자들이다.
이러한 비극의 일은 예수를 종교로 믿었던 우리에게도 그대로 일어난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오해하여 여호와와 그리스도로 잘 믿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진정 하나님의 도성을 지었다. 이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도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나와 당신이 바로 그 왕국 시민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은 열두지파를 새롭게 회복하셨고, 만복을 주고 계시며, 이방의 돌들로 살아 있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셨다(Origen, Rom. 164). 사탄과 죄악과 사망과 저주와 세상에 잡힌 자를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다 해방하셨다. 그리고 그 살아난 돌들로 새로운 예루살렘을 짓고 계시며 영원에서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없이 성경을 보면 성경도 우리에게 올무가 된다. 성경은 영과 생명으로 풀어야 한다. 성경이 율법이 되고 문자가 되면 결국 그리스도가 거절된다. 그러므로 그들의 “밥상”인 성경이 잔치상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옥죄는 올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오셔서 오셔서 성경을 깨닫게 해주어야만 성경이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의 밥상이 된다. 매일 우리는 생명의 밥상을 성경 안에서 맞이하도록 하자.
바울은 메시야가 온 세상을 위해 왔고 그 메시야가 나사렛 예수라고 가르쳐서 미움을 받았다. 메시야가 예수라는 것도 유대인에는 수용하지 못하는 가르침인데 더구나 메시야가 유대인만이 아니라 온 세상 이방인들을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도 유대인들이 인정하기 어려웠다. 예수를 그리스도 안 믿는데 어찌 여호와로 믿을 수 있겠는가! 또 유대인은 아브라함에게 났으므로 새로 태어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할례를 받아 율법으로 났으므로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물과 영으로 새로 태어나야 함을 요구하신다. 오늘 우리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부분적으로 믿으므로 세례의 물로 태어났다. 유대인이 아브라함에게 태어난 것도 또 율법으로 사는 것도 물로 태어난 것과 같다. 그러나 새로운 영으로 태어나야 하며 이 영은 롬8:2의 생명의 영이며 롬8:9의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생명으로 우리 새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오셨고 이제 우리 생명이 되신다.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 안에 새로 태어났다는 믿음으로 살자. 우리 안에 그 생명이 있다. 이를 믿는 우리 믿음과 실재하는 내적 생명을 하나로 연합시키자. 참 율법(“원수를 사랑하라”)은 옛 율법(“눈에는 눈으로 하라”) 이상의 말씀이므로 율법으로 살자는 믿음이 아니라 생명으로 살자는 믿음을 고백하자.
롬11: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 성경은 첫 언약(문자와 율법과 노력)으로 믿을 수도 있고 새 언약(그영과 생명과 믿음)으로 믿을 수도 있다. 첫 언약 아래서는 우리 영의 눈이 흐려져 있고 등은 죄짐을 지고 늘 굽어 있다. 우리가 옛 언약을 붙들면서 주 예수의 생명을 모르면 그리스도와 진리를 보는 눈이 흐려지게 되고 우리 등은 이 세상 걱정으로 굽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믿어 그를 통해 우리 눈이 고침받았다. 그분이 실로암 연못이 되셔서 우리 눈을 씻으셨고 새로 빚으셨고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뚜렷히 볼 수 있다. 또 세상 염려과 업무로 땅만 보며 살다가 허리가 굽은 우리를 그리스도가 베데스다 연못이 되셔서 낫게 하시고 펴게 하시고 위로 머리를 들고 하늘의 비전을 보고 지낼 수 있다. 그리스도를 실제로 보고 풍성한 삶과 새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게 하신다.
롬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스라엘)이 쓰러지게(패망케) 하려고 넘어뜨리셨는가?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그들(이스라엘)로 [은혜의 선택을] 시기나게 함이니라”
: 그들이 넘어져서 멸망 안에 들어갔는가? 아니다. 또 멸망당하게 하려고 넘어뜨리셨는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넘어진 것이지 패망한 것이 아니다. 옛 언약의 사람이 넘어지고 새 언약의 사람들은 일어난다. 넘어짐과 패망함은 다르다. 옛 언약에서는 넘어지게 하셔야 새 언약으로 일어나게 하시는 것이다. 죄로 넘어졌던 우리를 옛 언약으로 다시 넘어지게 하셔서 이제 새 언약으로 온전히 일으키신다. 인간 의와 율법의 첫 언약이 아닌, 믿음으로 의와 생명을 얻는 새 언약을 주시기 위해서 또 그 풍성함을 선물하시기 위해 우리를 새 언약 안에서 일으키신다. 고로 육신의 이스라엘은 먼저 세상과 행위와 율법으로 살다가 넘어지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율법으로 의를 얻을 수 없게 하기 위해 넘어뜨리셨다. 그들이 생명과 영으로만 새로 서도록 만드신 것이다. 그들은 이런 역할을 보여준 것이다. 그들이 쓰러지나 아예 그들을 멸망시키려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는 쓰러짐을 보여주신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이를 깨달아 율법으로는 쓰러지니 늘 내적 생명을 감사하고 이 생명이 자라도록 그리스도께 구하고 말씀 안의 생명을 먹고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자.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이미 생명으로 오샸다.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 안의 그 생명을 느껴보자. 주 예수님은 식탁이시요 그 식탁의 양식이시요 내 생명이시다. 할렐루야!
오 사랑의 주 예수님 당신의 놀라운 역사를 찬송합니다 당신이 이루셔서 선물하시고 이를 얻고 누리고 흐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율법으로 넘어지게 하셨으니 어리석게 율법으로 서지 않게 하시고 생명으로 서게 하소서 우리 자신으로 넘어지게 하셨으니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새로 서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항목들이 구체적으로 풍성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하는데 귀히 쓰임 받게 하소서 주의 자녀들을 굽어 살피시는 우리 하나님이시여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더 풍성히 교제하게 하소서 오 주 예수여 주 예수여 주 예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