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생명의 직분

호서대 김동주박사의 생명시리즈

by 조작가의 책세상 2021. 5. 1. 12:50

본문

“생명의 직분”
롬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diakonia)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 그리스도인은 이제 이방인을 향한 존재이다. 바울은 유대인의 목적을 깨달았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전해야 하는 목적으로 세워지고 구성되고 구별된 자들이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랫동안 스스로의 율법에 갇혔고 지키지도 못했다. 이제 유대인인 바울은 전에는 실패했으나 결국 자신의 존재의 목적을 깨달았다.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의를 보라고 하며 이방인에게는 은혜로 거저 의를 주시는 그리스도를 보라고 한다. 복음의 통로가 되는 역할이 자신 인생의 영광이라고 한다. 로마서 수신자에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같이 있다. 또한 바울이 이방인 사도이므로 이방인인 우리는 바울의 성경 해석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가 영과 생명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해석이며 이것이 우리의 해석이다. 누가 내게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물으면 우리가 온갖 종류의 해석들(양식, 편집, 문학, 사회학, 수사학, 역사 등등)을 알지만 생명의 해석이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다. 성경은 전체가 생명 덩어리다. 그리고 말씀이신 그리스도이다.

유대인은 이스라엘의 유대인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도 율법과 종교로 믿는 많은 신자들을 가리킨다. 이방인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다. 이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선택 받은 종교인들과 예정 아래 이방인들을 늘 만난다. 우리도 바울과 마찬가지이다. 그대는 자신의 존재 목적이 그리스도 생명과 은혜의 그릇이 되는 것임을 보는가? 이것이 인간의 가장 큰 영광임을 아는가? 어디서나 믿는 신자들을 만나면 시기받을 정도로 그리스도를 누려야 하고 이방인들을 만나면 그들 사이에 빛과 평강과 기쁨을 내고 썩지 않는 생명인 소금으로 있으며 주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증거하는 것이 우리 존재의 목적이다. 이것이 우리 사역이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 자체도 사역이다. 우리는 믿음에서 난 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확대시키는 사도이다.
바울은 이처럼 자신의 생명 사역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다. 유대인에게는 시기나게 하고 이방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사도)됨을 아름다운 사역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방인의 그리스도 충만을 통해 유대인의 그리스도 충만을 가져오겠다고 한다. 우리 각자의 사역을 바울처럼 복음 안에서 아름답게 말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다. 척박한 환경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샘물이 되는 직분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에게 영광이다.

롬11: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은혜 선택을] 시기하게(parazeloso)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 우리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과 능력을 알게할 때 종교로 믿는 자들은 우리 생명을 시기하다가 결국 생명을 알게 된다. 이것이 골육 일부를 얻는 것이다. “시기”(parazeloso)라는 단어는 미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부러움과 궁금함과 충동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 생명은 종교로 구주를 믿는 자들이 부러움을 내고, 우리 내적 평강과 생명에 대한 궁금함을 내고, 그리스도를 향한 성령의 충동까지 낼 것이다. 우리가 생명안에 지낼 때 우리 생명은 주위를 부러움 갖게 하고 궁금함을 내고 그리스도를 향한 충동을 일게 한다. 병자를 일으키게 하는 베데스다 연못의 동함은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골육은 함께 믿는 가족과 성도들이 아닌가! 그들에게 우리 생명이 저절로 전달되는 것을 볼 것이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이므로 그리스도는 늘 흘러가고 전달된다. 누가 이 그리스도를 막겠는가! 우리가 율법으로 살아도 그리스도가 오시고 또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시나 율법으로 사는 것 자체가 온전한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거절하는 결과를 낳는다.

유대인들은 자신 행위의 의를 추구하다가 결국 믿음의 의를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얼마를 구원할 뿐이라고 바울이 고백하듯 우리도 그리스도 생명이 부분적 성장임을 볼 것이다. 그러나 이 생명은 놀랍게 확장될 것이다. 백성 아닌 자로 시기하게 하는 것은 생명과 은혜를 시기하게 하려는 것이다. 결국 자기 행위가 아닌 은혜를 추구하게 하시려는 의도이고 자기 열심이 아닌 생명을 간구하게 함이다. 유대인이 전에 율법의 본보기였던 것처럼 이제 이방인과 남은 자가 은혜의 본보기이다. 종교적 유대인의 그리스도 거절이 이방인이 거져 받는 은혜의 풍성을 위한 모형과 기초가 되었다. 하물며 그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점차 믿게 된다면 얼마나 풍성하고 충만하겠는가! 우리의 사역은 어디서나 생명과 기쁨과 빛과 평강과 복음으로 가득해 있는 것이다. 우주적 분향단이신 그리스도처럼 어느 곳이나 나와 당신도 생명을 간구하고 생명을 향기내는 생명의 분향단이 되도록 하자. 주 예수님은 나의 구원이시요 내 의이시요 내 존재이시고 생명이시다. 할렐루야!

오 주 예수님 우리 생명을 강력하게 하소서 생명이 넘치게 하소서 생명을 우리 주위가 모두 시기나게 하소서 그들이 생명에 충동되게 하시고 생명에 궁금케 하시고 생명에 인도되게 하시고 생명을 체험케 하소서 오 생명의 하나님 우리 안에 넘치소서 생명이 율법도 성경도 말씀도 깨우치게 하소서 우리 육신도 몸도 일도 생명이 넘치게 하소서 오늘도 생명의 빛과 위로로 당신의 신부를 격려하소서 오 주 예수여 주 예수여 주 예수여

'호서대 김동주박사의 생명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벧엘  (0) 2021.05.15
생명의 정결  (0) 2021.05.05
생명의 은혜  (0) 2021.04.28
생명의 기립  (0) 2021.04.24
생명의 밥상  (0) 2021.04.2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