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생명의 안식

호서대 김동주박사의 생명시리즈

by 조작가의 책세상 2021. 5. 19. 10:59

본문

“생명의 안식”
창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 천지와 만물이 이루어젔지만 여전이 부족하다. 만물이 다 이루어졌는데 무엇이 부족한가? 안식이다. 이 안식이 일곱째 날 만들어지고서 비로소 완성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물질 세계에도 안식의 복을 주신다. 얼마나 감사한가! 아무리 일해도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 이 놀라운 히브리 사상은 성경에서 나왔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만인을 사랑하셔서 일로도 축복하시고 안식으로도 축복하신다. 우리는 안식을 누릴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창조를 감사하고 하나님 안에 쉬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쉬시고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쉰다.

그런데 위 말씀은 육신의 안식만 가리키지 않는다. 실제의 안식은 구원의 안식이다. 진정한 안식은 언제 성취되는가? 이것은 언제 일어나는가? 주 예수님이 우리 안식이 되실 때이다. 그는 우리에게 오셔서 모든 안식을 주신다. 구약 창2장에 일곱째 날의 안식이 있다면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셔야 참 안식이 성취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고로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히4: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16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안식일을 두신 것은 안식과 ‘일’(day)이라는 때를 주신 것이다. 육신으로는 안식을 갖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주적인 안식을 주시기 원하시며 이것이 진정한 창조의 완성임을 알려 주신다. 그대가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어도 안식의 날에 이르지 못하면 이는 아직 부족한 것이다.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안식이시며 또 안식일이시다. 그리스도는 안식이 되시며 안식을 주시는 때가 되신다.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믿을 때 안식을 얻는다. 사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인생 전체가 안식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안식’을 간직해야 하고 매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 칠일마다 안식일을 두는 것은 그 사이의 날들을 안식으로 채우라는 것이다. 우리 안에 온 생명은 이제 우리를 일곱번 째 날 생명 즉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는 생명으로 이끄신다. 이 안식은 다음을 가리킨다.

첫째, 안식은 죄악과 율법의 수고를 쉬는 것이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히4:10). 영적 노동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가리키고 인간의 의를 벌어들이는 행위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생명이시고 이 생명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는 비로소 안식을 깨닫는다. 구원의 수고를 우리가 하는 것도 아니고 생명이 일하신다. 우리는 전에 매일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악의 일을 했으나 생명이 오면서 멈추었다. 이제 매일 주 예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신뢰한다. 또 우리가 죄를 이기려고 전에 매일 열심히 율법의 일을 했으나 이제 안식에 들어간다. 내 자신의 일을 쉬고 그리스도의 일하심을 누린다. 하나님은 안식을 두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가 율법의 수고를 쉬고 은혜와 풍성을 가득 누리게 하신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육일 동안 일하고 칠일에 쉬는 안식을 통해 구원이 안식으로 주어질 것을 미리 예고하셨다. 새 사람 안에서 육일 간은 감사로 씨를 뿌리는 것이지만 옛 사람 안에서 육일 간은 자기 노력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제 사탄과 죄악과 사망과 육신과 종교와 율법의 육일이 지나게 되었고 제7일로서 그리스도가 다 이루신 안식이 오는 것을 체험한다.
그대의 가정에서 그대가 무엇을 하여야 밥을 먹는 것이 아니다. 시골 우리 어머니는 내가 먹기 싫다고 할 때까지 뭐든지 거저 주시려 하신다. 남으면 싸서라도 주신다. 이 모든 지구상의 모든 부모의 마음을 다 합한 것보다 큰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다. 그리스도가 모든 구원을 이루시고 구속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셨으므로 우리는 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고 찬송해야 한다. 성도가 가장 못하는 일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안식이다. 율법의 수고로 자기 의를 모아두려 말고 그가 온전히 성취하신 공로를 누리며 진정 안식해야 한다. 안식하는 일도 생명이 주관하는 것이다.

둘째, 안식은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에 오셔서 선물해 주실 모든 것들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성경에서 특히 누가복음에서 일곱 안식일을 지내시며 그 안식일들 안의 모든 구원의 역사를 우리에게 선물하신다.

1)안식일에 나사렛서 선포하심(눅4)
2)안식일에 가버나움서 가르침(눅4)
3)안식일에 밀밭에서 먹임(눅6)
4)안식일에 오른 손 마름 고침(눅6)
5)안식일에 꼬부라진 여인 고침(눅13)-신부로의 성장
6)안식일에 수종병 남자 고침(눅14)-일군으로 성장
7)안식일에 향품과 향유 준비(눅23)

창세기의 안식일은 바로 그리스도의 ‘칠일’ 즉 온전한 날이며 그리스도의 안식일을 기다리는 날이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와 사시고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먹이시고 고치시고 눈여시고 씻으시고 종결하신다. 이 일곱 안식일을 지낸 이후에 또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안에서 일곱 안식일을 지내고 배운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에는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영의 충만은 실은 그대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의 안식에서 나온다. 우리는 이 놀라운 생명의 프로그램과 과정 안에 저절로 있다.

셋째, 그리스도의 장사지냄이 안식이다. 눅23장 그리스도 고난의 끝은 죽으심이고 바로 안식일의 시작이다. 모든 고난은 사실 안식을 예비하는 것이다. 오늘의 고난에 슬퍼 말라. 하나님은 나와 당신에게 안식을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장사지냄과 새로운 무덤은 우주적 안식이다. 우리는 그의 장사지냄으로 우리도 장사지내졌고 우리 문제도 육신도 장사지내졌기에 안식할 수 있다. 우리 안의 생명이 안식을 주신다. 그리스도의 장사지냄은 단번에 끝내심이다. 옛 사람에 속한 것이 보일 지라도 이는 이미 죽고 묻힌 것이다. 묻힌 것을 다시 끄집어내는 어리석은 신앙이 되지 말라. 그리스도 안에서 옛 것은 이미 다 끝났다. 그 끝남을 믿고 그리스도를 플러스로 얻어가는 것이 바로 생명의 신앙이다. 옛 사람에 속한 것을 당신이 회개하고 집중해서 치료 받는 것이 전혀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결단코 문제가 없어지지 않는다. 당신은 옛사람에 속한 것을 처리하기를 애쓰지 말고 당신 옛 사람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음을 알고 믿자. 그리고 그리스도만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옛 사람의 기질과 상처를 스스로 기도하여 고치는 것은 생명이 전혀 아니다. 이것은 종교이다. 진정한 기독교가 아니고 자기 노력이고 애굽의 술사 수법이다. 옛 사람 자체를 끝내신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진리이다. 우리는 이미 끝났다. 자신에 대해 한탄하며 기도할 시간이 있다면 그리스도를 조금이라도 알아가자. 그분이 이루신 것이 얼마나 많은데 하나도 안 이루신 것처럼 또는 하나도 안 받은 것처럼 여기지 말라. 정말 그리스도가 이미 이루신 것은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생명의 말씀으로 자신을 채우며 그리스도만 찬송하며 안식을 누리며 그리스도께 더 나아가는 것이 진리의 생활이다.

넷째, 그리스도 몸 안의 안식이다. 하나님은 가정과 지체와 교회라는 영광스러운 장소를 두시고 이곳에서 우리가 안식을 누리고 교통하고 쉼을 얻기를 원하신다. 많은 교회가 영적 노동과 자기 종교의 장소가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교통과 사랑의 교제가 있다. 늘 생명을 공급 받으며 안식을 누리는 곳이 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다섯째, 새 예루살렘이 우주적 안식처이다. 고로 우리 안에 온 생명은 마침내 우리를 그리스도로 충만케하여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되는 하나님의 경륜으로 인도한다. 최종 안식은 새 예루살렘을 위한 안식이다. 고로 창2장은 계21장과 같다. 안식을 영원히 누리는 완성의 실체가 나오며 거기 생명나무도 생명강도 있다. 그렇기에 다시는 눈물도 없고 고통도 아픔도 사망도 없고 대신 빛과 생명과 사랑이 영원히 넘치며 우리와 영원히 연합된 하나님 안의 새 예루살렘을 지금 맛보며 소망하며 오늘이라는 현재에서 우리는 함께 지어지며 나아가는 것이다. 주 예수님은 우리 안식이시요 안식일이시요 생명이시다. 할렐루야!

오 거룩하신 주 예수님 당신의 칠일에 감사합니다 생명 안에서 제 칠일을 주셨으니 언제나 참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참 생명이 오늘도 흘러 넘치고 불신을 제하시고 율법을 쉬게 하시고 그리스도 사랑이 넘치소서 사랑의 하나님 매일 안식일이 되소서 우리 모든 시간이 생명으로 가득하게 하시고 안식을 주고 받게 하소서 생명의 일곱 안식으로 제자로 조성하시고 실제의 일곱 안식으로 사도로 세우소서 안식일이 성취되어 영원한 새 예루살렘 당신의 거처 완성되게 하소서 오 주 예수여 주 예수여 주 예수여

'호서대 김동주박사의 생명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돌들  (0) 2021.05.26
생명의 이름  (0) 2021.05.22
생명의 벧엘  (0) 2021.05.15
생명의 정결  (0) 2021.05.05
생명의 직분  (0) 2021.05.01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