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정결”
민수기19:2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
19:3...진영 밖으로 끌어내어서 자기 목전에서 잡게 할 것이며
19:4 제사장 엘르아살은 손가락에 그 피를 찍고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
19:5 그 암소를 자기 목전에서 불사르게 하되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하고
19:6 동시에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에 던질 것이며
19:9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19:10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도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그중에 거류하는 외인에게 영원한 율례니라
: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놀라운 한 면이 민19장의 붉은 암송아지 제사이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이미 저주에서 이미 구원 받은 우리가 일상에서 허물과 부정이 많지만 날마다 우리를 씻으시는 그리스도의 정결이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처음 나게 하고 다 갚은 것도 예수의 피밖에 없지만 날마다 정케하고 매일 세수하듯 우리를 씻는 것도 예수의 물과 재와 피이다. 물론 거의 모든 것은 먼저 피로 씻으며 동시에 일부는 물로 씻는다. 예수의 피밖에 없지만 실은 피밖에 없지는 않고 예수의 물도 있고 예수의 재도 있고 예수의 영도 씻으신다. 우리 안에 온 그리스도의 생명에는 이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9:26). 단번에 매일 늘 없애신다.
제물인 암송아지가 흠이 없고 멍에 매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삶과 죄의 멍에가 없음을 나타내고 그분의 정함이 우리 것으로 선물되었음을 누리는 것이다. 제사장인 우리 목전에서 죽으신 제사장 그리스도의 제물 그리스도로서의 승리의 공로를 늘 감사해야 한다. 피를 회막에 일곱번 뿌리는 것은 하나님의 전인 우리 몸 안에 그리스도의 피를 온전히 기대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이 피를 매일 우리 지성소의 자리인 영에 뿌리도록 하자. 제물을 완전히 불사름은 그리스도가 철저히 고난 받으셨기에 내게 남은 죄가 없을 정도로 다 구속하셨다는 말씀이다. 이를 누리자. 자신을 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누리고 연합시키자.
‘재’는 주 예수님의 완전한 태워지심 즉 모든 것을 다 받으시고 죽으심을 말한다. 즉 그의 죽음은 ‘재’로서 남겨져 우리에게 효과를 주고 있기에 피와는 구별된 항목이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있고 그리스도의 재도 있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은 영원한 현재이다. 재를 적용하는 것은 늘 일어나는 기분 좋지 않은 일들을 그리스도의 불로 다 태우고 이미 다 탄 것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 편에서 재를 적용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합하여 재가 되었다. 그가 재이면 우리도 재이다. 정결케 된 재이고 가족과 이웃을 정결하게 하는 재이다.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송아지와 함께 태우는 것은 그 재 안에 백향목의 영광과 우슬초의 고난과 홍색실인 보혈의 지속적 수혈이 들어있다는 말씀이다. 긴 줄이므로 지속적이다. 고난도 의미한다. 이것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태워지고 있으며 합쳐져 태우고 얻게 되는 재에는 이 모든 것들의 효능이 있다. 또한 이제 우리도 재이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우리 자신을 불탄 재로서 여기는 것이고, 재로서 여긴다고 해도 그 안에 영광도 있다. 우슬초는 우리의 적은 믿음도 가리키고 우리가 받는 거기 부활의 영광과 승천의 영광도 들어 있어서 우리가 재를 사용하는 것에는 그 안에 그리스도의 약속도 축복도 들어 있는 낮아짐이다. 이를 물이 섞어 쓰는 것은 생명수 그리스도를 말씀에서 체험하면서 그리스도의 정결케 하시는 공로들을 누리는 것이다. 그냥 한 마디로 그리스도께서 날마다 씻고 정결케 하고 계시며 이 모든 좋은 효능들을 다 주고 계신다는 말씀이다.
‘저녁까지 부정’은 인생의 전체적인 약함이다. 우리는 한 면에서 재를 거두며 우리가 늘 연약한 것을 그리스도 앞에 고백한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께 고하도록 하자. 그러나 우리를 동시에 정케하시는 회막이신 그리스도가 있다.
왜 붉은 암송아지가 제사에 사용되었는가? “붉다”는 히브리어로 “아담”(adamah)이라는 단어이다. 이는 에덴 동산의 ‘첫사람 아담’과 같은 단어이다. 흙을 의미하고 소멸될 것을 말한다. 붉은 제물은 흙과 같은 아담의 연약함을 매일 담당하기 때문에 붉은 것을 택하셨다. 이는 또한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리킨다. 우리 약함을 이미 겪으셨기 때문에 구주는 긍휼로서 늘 공감하신다. 붉은 색은 그리스도의 피도 가리킨다. 이는 날마다 그 피 아래 거해야 함을 보여준다. “암송아지”는 그리스도의 여성스러운 사랑과 순종과 봉사를 가리킨다. 또 연합한 우리들이 신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큰 소”가 아니라 “송아지”인 것은 그리스도도 키와 지혜가 자라셔서 풍성해지듯 우리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자라날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인 것은 가축에서 모두를 유익케 하는 가장 풍성한 존재이므로 우리의 영적 운명이 생명 안에서 풍성한 자가 될 것을 언약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매일 우리를 성장시키고 계신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의 모양(‘타고난 재’)에 합하여 자라나면 우리는 그의 부활의 모양(백향목)에 합하여 자라날 것이다(롬6:5).
민19:10의 ”외인들의 영원한 율례”라는 말씀이 감사하다. 이방에서 나그네된 우리들이 본향인 그리스도의 품과 새 예루살렘을 향해 인생 길을 때에 피와 물과 재가 역사하여 늘 저절로 정결케 되는 영원한 규칙이 믿는 우리에게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적용이란 주 예수 이름을 부르고 믿음으로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고 우리 안의 생명이 저절로 피와 물과 재를 내는 것이다. 이 정도로 그리스도를 누리자. 이 선물들을 다 감사하는 기도로서 우리 것으로 모두 취하도록 하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다. 주 예수님은 우리 소요 재요 물이요 생명이시다. 할렐루야.
오 주 예수님 연약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피와 재와 물과 각종 효능의 항목들을 늘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크게 기쁘게 하시고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소망 삼아 살아가게 하소서 날마다 말씀 안의 물과 재를 신뢰하고 우리에게 적용하고 우리를 통해 이웃에게 제공하게 하소서 우리를 항상 맑게 하시는 당신을 보게 하소서 찬송하나이다 오 주 예수여 주 예수여 주 예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