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둥”
창35: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 야곱은 자손들에게 상수리나무와 돌기둥을 보라고 한다. 상수리나무에는 그 나무처럼 인내한 드보라가 묻혀 있고 돌기둥에는 야곱의 비전이 담겨 있다. 칼을 믿고 탐욕으로 사는 자손들에게는 드보라를 본받게 하기 위해 그녀를 벧엘의 상수리 나무 아래 묻고 큰 애도를 보이고 있다.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을 짓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 창34장 신앙에서 나아가, 드보라처럼 이름 없는 헌신을 기리고 소망하게 된다. 주 예수의 생명은 우리 안에 와서 이 비전을 이루어 가신다.
성경에서 ‘드보라’ 이름이 최초로 35장에 등장한다. 창24장 리브가의 혼인 이야기에서 이 여종은 처음 소개되는데 이 여종은 그냥 “유모”라고만 소개되고 있다. 리브가와 함께 가나안으로 함께 내려온 이후 계속 임정까지 그녀는 성경에서 무명이었다. 이제 창35장에서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유모의 사역을 한다면 이는 당장 값을 얻는 것이 아니다.
드보라는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를 돌보았고, 또한 야곱이 태어날 때 보살폈고, 야곱의 열두 자손이 태어날 때도 산간하였다. 그녀는 야곱이 가나안으로 들어오자 리브가를 떠나 야곱을 돕기 위해 왔을 것이다. 드보라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영광도 없이 삼대를 돌보았다. 벧엘은 이런 숨은 유모들을 기리고 우리도 숨은 유모가 되는 곳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의 집은 능력 있는 큰 영웅들이 세우는 것이 아니고 유모 드보라처럼 평생 이름 없이 섬긴 자들을 기리고 그런 자들에 의해 세워진 영원한 집이다. 우리에게 유모가 죽었으니 이제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며, 우리를 돌본 유모의 죽음으로 우리도 다른 지체들을 보살피는 유모의 사역을 해어 한다는 말씀이다. 창34장에서 칼을 휘두르며 능력을 과시했던 아들들에게 야곱은 드보라의 삶을 기억하고 본받으라고 권한다.
묻음은 그리스도의 장사지냄을 가리키는데 세겜에서는 부정적인 것(드라빔)을 묻었고 벧엘에서는 감사한 것(드보라)을 묻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사지냄에서 모든 나쁜 것과 좋은 것이 다 묻힘을 본다. 장사지냄은 다 묻는 것이며 드보라가 묻힘은 하나의 밀알로서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신앙을 가리킨다.
누가 우리 유모였겠는가? 그리스도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유모이셨고, 율법 아래 살 때 유모이셨다. 생명 안에 태어날 때는 우리 친부요 친모가 되셨다. 그리스도는 늘 이름 없이 일생 우리 인생을 섬겨 오셨다. 매일 고된 그대의 발을 씻으시는 사랑의 그리스도를 느끼는가!
35: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 야곱은 벧엘에서 돌기둥을 세웠다. 여기서 그는 자손들에게 돌기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그의 자손들은 기둥의 신앙이어야 한다. 어느 곳이나 역한 영으로 있지말고 겸손하지만 영 안에서는 단단한 믿음의 사람으로 생활하자. 돌의 속성이 영원에 속한 것처럼 돌기둥이 섬은 영원한 생명의 신앙이 세워진 것을 말한다. 또 돌의 히브리어 이름(eben)이 “아버지와 아들”(ab+ben)의 결합된 단어 에벤인 것처럼 돌기둥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로 영원히 합쳐진 것을 가리킨다. 기둥인 것은 견고하고 표현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돌로 만났고 그가 우리 모퉁이돌이 되는 체험을 하였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든든히 대표하고 증거하는 돌이다. 그런데 창35장은 단체의 돌이다. 단지 개인 하나의 돌만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된 돌이다.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는 새로 지어지는 생명의 집으로 시작되었다. 생명이 온 후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생명 안에서 교제하며 서로 지어짐을 느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더 연결되는 것이다. 창28장 벧엘에서도 돌기둥을 세웠고 창35장에서도 또 돌기둥을 세웠다. 창28장은 개인적으로 베드로와 같은 그리스도의 돌이 된 것이고 창35장은 그의 자손 모두가 한 돌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확장이다. 만약 그대가 그리스도의 확장을 느끼고 있다면 바로 이 벧엘의 비전을 받은 것이다.
돌기둥에 기름을 부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돌이신 육신이며 또 기름이신 거룩힌 영의 충만으로 오신 것을 가리킨다. 참 인간이시며 참 하나님이시다. 주 예수님이 우주적 기둥처럼 설 것이다. 또한 벧엘 즉 새 예루살렘은 우리 스스로 애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지어지는 것을 계시한다. 우리도 돌이므로 매일 기름을 붓듯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부으심을 믿고 늘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우리 안의 기름 부음을 누리자.
창28장에서는 돌기둥 위에 기름만 붓고 포도주(전제: 액체 제사)가 없었으나 창35장에서는 이 둘을 다 붓는다. 특히 전제 즉 포도주를 붓는데 이것이 차이이다. 이는 생명의 신앙과 진보를 가리킨다. 생명은 포도주의 기쁨을 낸다. 이제 우리는 생명 안에서 늘 기쁘다. 환경과 상관 없이 그리스도로 기쁘다. 이 기쁨을 늘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 붓기를 소망한다. 특히 제사에서 제물로 부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포도주가 되어 제물로 부어지신 것을 나타낸다.
우리 매 장마다 생명이 진보하는데 창35장에 오며 그리스도 생명의 포도주를 우리 예배에도 활동에도 붓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관제로서 부어지기를 소망한다. 생명의 체험이 참으로 감사하고 좋은 것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기쁨이 솟는 것이다. 솟는 기쁨을 영 안에서 누릴 때 포도주가 된다. 타인을 마시게 하는 생명의 포도주로도 흘러 간다. 주 예수님은 우리 드보라이시며 돌기둥이시고 포도주이시며 생명이시다. 할렐루야!
오 나의 사랑이신 주 예수님 당신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땅에 기둥으로 오시고 우리 의지 되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의 집으로 지어지게 하시고 집의 가장 큰 능력이 되시니 우리도 기둥으로 표현되게 하소서 어느 곳에서나 우리 신앙을 견고하게 하사 모든 것을 받치는 힘찬 기둥되게 하소서 우리의 포도주가 되신 주 예수님 당신으로 매일 기쁘게 하시고 거룩한 이름 안에서 포도주가 넘치게 하시고 모두에 공급하소서 예배도 생활도 기쁨 넘치게 하시고 영 안에서 생활하며 그리스도의 확대됨으로 살게 하소서 제단을 세우며 그리스도 십자가를 알게 하시고 우리도 언제나 예배자가 되게 하시고 제물되게 하소서 오 주 예수여 주 예수여 주 예수여